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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후기

반년간의 러닝 회고

wooluck 2021. 9. 16. 19:52

누구보다 집을 사랑하고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공간은 이불속이라고 생각하는 집돌이의 대표주자로서

유산소 운동을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진심이라고 하지만 아직 반년밖에 안됐기에 이게 내 취미다! 라기보다 취미로 만들고 싶은 수준이다.

몇 년씩, 몇십 년씩 달리는 분들 앞에서 이 정도면 거의 아기 같은 느낌이지!

 

러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복합적이다.

주변에는 간단하게 누님을 위해서나 건강 관리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데 명확히 말하자면 건강 + 누님 +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먼저 건강적인 측면이다.

 

이직을 준비하며, 내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됐다.

자바스크립트를 이해하고 사용하기보다 제이쿼리라는 도구를 무지성으로 사용했었기 때문에

진짜 아는게 하나도 없었지..

당장 회사를 가면 너무 민폐라고 판단했기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 싶었으니 몰아칠 수밖에 없었지.

올해 초 코드스쿼드라는 부트캠프에서 학습을 시작하고, 3월까지는 주 7일 학습으로 달려왔었다.

지금은 '다 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알지 않을까?' 라고는 할 수 있게 성장한 거 같다.

 

잠시 딴길로 얘기가 샜는데.. 2월까지 여차저차 버티고, 3월부터 체력적인 한계를 확실하게 느꼈다.

학습하면서 별도로 알고리즘을 매일 풀고 있었는데 거기다 면접 준비까지 겹쳤었으니까...

 

그래서 뭔가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었다.

 

다음 이유는 누님.

어느 날 갑자기 (시기도 공교롭게 3월 초쯤!) 누님이 마라톤을 나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누구보다 유산소를 싫어하고 땀흘리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면서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건강관리를 하려는 건가?

3보이상 차량 탑승을 선호하는 이 사람이?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한강에서 러닝을 자주 하니까 라고 하더라...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처럼 명확한 동기가 어디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하겠다고 말을 해버렸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하겠다! 는 아니었고, 나에게는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마지막 이유인 사람이다.

 

코드스쿼드에서 러닝이 취미인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과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왜? 여기서 학습을 시작하며, 1차적인 목표는 학습이었지만 네트워크 형성도 그에 준하는 목표로 상정했었다.

 

그런데 같이 뛰려면 어느정도 체력은 있어야 하니까 일단 내가 어느 정도 뛸 수 있는지 궁금해서 뛰어봤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날은 춥고,

허벅지는 아프고,

종아리도 아프고,

숨도 가빴다.

살기위해서 라는 변명으로 두 다리를 멈춰 세웠다.

결국 집 앞에 있는 근린공원의 한바퀴인 2.7km 조차도 뛰지 못하고 집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3km는 뛸 줄 알았지!

그런데 안되더라.

며칠 뒤에도 근육통이 있었고,

그러고 나서 이런 격한 운동은 내 체력을 갉아먹고, 평소에 학습에 집중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운동을 하기보다 주 6일 학습으로 회복하는 게 더 낫다!'라는 자기 합리화로 2주를 넘게 쉬었다.

 

그렇게 쉬다가 면접을 마치고, 문득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나 크게 들었다.

뛰겠다고 해놓고 뛰다가 포기하고, 귀한 면접 기회도 날려버리고, 그렇다고 프로젝트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때 면접은 결과적으로 합격이긴 했지만!

나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제대로 달려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처음보다 확실하게 성장했다.

 

그때는 2km의 거리가 한계였고, km당 8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17km가 넘는 거리에 km당 5분 근처까지 내려왔으니 거리는 850%, 속도는 50% 이상 성장했다!

 

이러한 체력적인 측면이 공부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

먼저 코드스쿼드와 우테캠동안 8개월을 주 6일 이상 학습했는데.. 매일 8~9시에 일어나고, 새벽 2~4시에 자는데도 버틸만하더라.. :)

 

그리고, 단순히 이런 체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학습 자세에 대해서도 큰 영감을 주었다.

 

1. 기록 향상을 위해 연습할 때, 사람마다 자신의 방법이 다 다르듯 학습도 남들을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2. 조급함으로 스스로의 페이스를 잃게 되면, 단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결국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것. 러닝에서는 부상이 될 수 있고, 학습에서는 번아웃이 될 수 있다.

 

정말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나는 올해를 데드라인으로 잡고 있었고, 그만큼 조급함이 컸기에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뛰다 보니 생각이 비워지면서 스스로를 관조할 수 있었다.

 

지금도 조급함이 사라진건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이 괜히 있을 수가 없겠지!

그저 조금씩 교정해나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글을 왜 적었느냐?

이번 우아한형제들 면접에서도 정말 실망스러운 답변만 일삼았고, 스스로에게 채찍을 주기 위해 준비 없이 하프마라톤을 시도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10km와 15km에서 보여줬던 페이스로 계산했을 때, 아마 1시간 50분 내외의 시간대로 완주에 성공했어야 하지만 실패했다.

 

면접이라는 천금 같은 기회를 바보처럼 얘기해버렸고, 스스로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무지성으로 달렸고,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일정한 속도로 쭉 뛰었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백 미터 단위, 아니 십 미터 단위로 속도가 들쭉날쭉했고, 이는 엄청난 체력 소모를 발생시켰다.

 

러닝이 끝나고 페이스를 확인해보니 경악스러웠다.

 

심박수가 190이 넘는 구간이 1시간 20분이다.

고강도 유산소를 1시간 20분... 스스로를 너무 혹사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과 함께 육체적으로 엄청난 무리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평소 이 정도의 속도로는 절대 이렇게 심박이 튀지 않는데라는 생각으로 페이스도 확인!

 

 

나는 보통 455~500의 속도로 뛴다. (455 === 4분 55초)

그런데 이번에는 440과 640을 넘나들면서 신체와 심장에 엄청난 부담을 줬고, 그럼에도 1시간 반 가까이를 뛰었다.

 

정말 무식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로 뛰면 진짜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면 삼십 분도 못 가서 때려치울 텐데 그래도 나는 끈기가 좀 있긴 하네?

 

역설적이게도 실패한 결과와 형편없는 페이스를 보며, 오히려 뿌듯해한다는 게 어이없긴 하지만 

이제 끈기 하나는 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반년이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기에 나 같은 의지박약과 게으름의 아이콘인 사람이 얼마나 지속할지 의문이긴 하지만 3년이고 5년이고.. 앞으로 계속 러닝이라는 좋은 취미를 유지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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